사고의 흐름에서 정리가 필요한 시점

일단, 부조리와 함께하는 삶은 거부할 수 없을 듯 하다. 부조리란 일반적으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라는 말로 대표된다. 사실 많은 것들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힉스로 차있건 에테르로 차있건 간에 끊임없이 새로운 부조리가 생산되는 듯하다. 이는 물리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비 물리적인 도덕적인 관점에서도 마찮가지이다. 아직까지는, 글쎄, 범인이 이 세상의 시작과 끝에 대한 선험적인 이해를 구하기 힘들고, 시간의 체계를 벗어나 시공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생각도 이해하기 힘들다. 항상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한계는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대단히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스타트렉 영화에 나오는 스팍과 같은 논리 체계의 종족만이 존재한다면 그 세계는 이상적인 세계 인가. 그것은 모든 것이 선험적으로 증명된 세계, 획일화된 태도, 양심을 들출 필요가 없는 기계적인 삶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자유가 없다.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렇지 선험적으로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도덕적인 부조리는 물리적인 부조리와 더불어 존재한다. 그러므로 부조리의 존재를 인정하면 부조리한 벽에 부딪혔을 때, 아마도 약간의 동요, 감정적인 동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인간적인 분출, 그리고 그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행한다를 결정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계적으로 행하는 것은 부조리에 대한 무시이다. 이는 삶에서의 자유 의지가 없는 죽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부조리를 뼈속깊이 인식하고 질적 또는 양적, 내가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 내가 바라보는 자연, 숨쉴 수 있는 공기, 을 내 자유의지에 따라 누리는 것, 이거다.


이제 가끔 내 자신을 침식해 가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죽어가는 내 삶(사람은 언젠가 죽는 다)에 대한 한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나의 자유 의지, 그에 따른 행위.. 그 다음은 무엇인가.

by 강세윤 | 2009/06/04 15:57 | 정리되지 않은 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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